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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순탄치 않았던 한일 50년..관계 개선 위한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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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63회 작성일 17-04-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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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순탄치 않았던 한일 50년..관계 개선 위한 과제는?

입력 2015.06.22. 17:45 수정 2015.06.22. 21:09              

 

 

[이브닝뉴스]

◀ 앵커 ▶

오늘은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일 관계는 외교와 경제 문제 등에서 상호 협력해 오면서도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으로 반목하는 등 순탄치 않았는데요.

김대호 아나운서가 한일관계 50년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1965년 한일수교]

광복 이후 단절됐던 한일 두 나라의 외교관계는 광복 20년 만에 정상화됩니다.

경제 개발과 국토 개발 등에 큰돈이 필요했던 우리 정부는 한일 수교와 함께 일제 강점기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 5억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 돈은 우리 경제 개발에 일부 보탬이 됐지만,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배상, 그리고 사죄 등 철저한 과거사 청산 없이 관계 복원에 나서 한일 간 갈등의 원인을 남겼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984년 전두환 대통령 첫 방일]

한·일 간 정상외교는 전두환 정권 때 처음 시작됐습니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방한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정상 회담이 성사됐고,

다음해 전 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1993년 고노담화 발표]

1990년대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터져 나오자, 일본 정부는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광복 5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총리가 식민 지배를 직접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도 나옵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 두 담화가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김대중 정부 때는 양국의 문화를 상호개방하는 '공동선언'이 이뤄집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에 이어 이른바 '한류 붐'이 일면서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데요.

[2005년 일본, 다케시마의 날 제정]

하지만, 이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 망언과 독도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우경화 흐름 속에 아베 정권이 탄생합니다.

 

◀ 앵커 ▶

아베 일본 총리는 총리 부임 후 그동안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망언으로 갈등을 고조시켰는데요.

관련 보도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아베 총리가 일본 국회에 출석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위안부의 강제동원이라는 근거 없는 비방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일본 총리]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까닭없는 중상이 세계에 퍼지고 있습니다."

UN 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가 자신을 군국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며 도발적인 연설에 나섰습니다.

[아베/일본 총리]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부디 그렇게 하세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다른 나라에서 전몰자들을 기리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베/일본 총리]

"지도자로서 존경과 숭배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국제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베 총리는 침략 역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내놓습니다.

[아베/일본 총리]

"(침략이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앵커 ▶

아베 총리의 도발적인 발언이 이어지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 김대호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김대호 아나운서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갖지 않았습니다.

아베 정권은 줄곧 한일 관계 회복을 강조하면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는데요.

관련 영상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박근혜 대통령의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 5분 전.

예고 없이, 아베 총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초 개막 연설에 불참할 예정이었던 아베 총리는, 그러나 방청석 맨 앞줄, 단상에서 불과 5미터 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누구보다도 길게 박수를 쳤습니다.

아베 총리는 '아쉽게도 박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없었다'는 말로 정상회담을 위해 박 대통령과의 우연한 만남을 의도했음을 내비쳤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

"정상 간의 흉금을 터놓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하자던 아베는 그러나 이후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를 계속 참배하겠다는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한국의 비판을 부당한 위협으로 규정합니다.

[아베 총리]

"(야스쿠니 참배한)우리 각료들이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는 있습니다."

다시 논란을 극도로 증폭시킨 다음 또 발을 빼는 듯한 화법으로 초점을 흐려 놓습니다.

[아베 총리]

"(역사 인식이) 외교,정치 문제가 되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침략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당연한 일로 만든 뒤, 즉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공론화하고 싶은 이슈를 다 던진 뒤,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모양새입니다.

 

◀ 앵커 ▶

한일 관계가 그동안 냉각된 데에는 아베 총리의 과거사 '역주행'이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요.

이러한 이면에는 아베 총리의 집안과 성장환경이 얽혀 있습니다.

관련 보도 내용,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기시 노부시케,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입니다.

2차 대전 전범인데도 미소 냉전 중에 복권돼, 자민당을 만들고 총리까지 오릅니다.

전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오히려 최고권좌에 올라, 사죄는커녕 평화헌법을 바꿔 전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해왔습니다.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죽기 전에 새 헌법이 만들어지는 걸 이 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아베의 성장시절 사고를 지배한 이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였습니다.

[노가미 (아베 총리 관련 저술가)]

"아베 총리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와 붙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외할아버지로 상징되는 침략역사를 자랑스럽게 하는 일이 아베에겐 정치를 하는 이유가 된 것.

위안부 부정, 침략 부정,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과거사를 부끄럽지 않게 만든 다음, 헌법 개정을 통해 과거와 같은 군사대국을 만드는 게 정치인 아베의 지향점입니다.

[아베 총리 (2006년 자민당 총재선거)]

"아쉽게도 할아버지 대에도 못했고, 아버지 대에도 못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야 합니다"

오랜 경기 침체에 시달려온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의 확신에 찬 과거미화는 강한 지도자, 답을 주는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며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더 강경한 왜곡과 망언의 유혹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 앵커 ▶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는 이제 멀어질 대로 멀어졌는데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반목보다는 협력이 양국에 이득이 된다는 점은 서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선 풀어내야 할 숙제가 많은데요.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 그리고 독도 문제 등을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김대호 아나운서, 전해주시죠.

◀ 김대호 아나운서 ▶

네, 불과 열흘 전쯤이죠, 지난 6월1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두 분이 같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올해 들어 다섯 분이 세상을 뜨면서 이제 살아계신 분은 쉰 명뿐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평균 나이는 89살로 거의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이죠.

현재 85살에서 89살이 26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다시 말해, 이분들이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도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열여섯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는 일흔세 살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강일출/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향에)엄마.아빠도 없는데 너무 서러운 거야. 내가 막 한풀 꺾이고 막어떻게 울어야할지 실컷 울고 왔는지 몰라. 실제로 다리도 벌벌 떨리고 이러는 거야. (고향에) 가기도 싫고, 엄마 빈자리, 아빠 빈자리, 오빠들 빈자리 보기 싫어."

빼앗기고 유린당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누구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어느새 아흔 살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두 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비롯해 올해만 벌써 다섯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50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나 살아있을 때 진정한 사과 한마디 듣고 싶다는 한 맺힌 외침.

[김복득/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13년 3월]

"너무 분해서 말을 못하겠어요. 사죄받고, 사죄받는 것. 보고 눈감고 싶어요."

 

◀ 김대호 아나운서 ▶

위안부와 더불어 중요한 문제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입니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은 지난 2012년 대법원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현안으로 떠올랐는데요.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 1004명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1000억 원대의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해 귀추가 주목됩니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영토주권과 직결돼 한일 관계의 '화약고'라고 불립니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독도 영유권 주장이 더 노골화되는 분위기인데요.

지난해에는 가수 이승철이 독도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공연한 뒤, 일본 공항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 앵커 ▶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맞은 지 50주년이 되는 오늘, 양국 수장들이 상대국 정부가 주최하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그동안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문가의 의견, 들어보겠습니다.

◀ 리포트 ▶

Q.수교 50주년, 한일 관계의 현주소는?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잠재적인 측면이나 국제적인 외교적인 발생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 관계는 거의 대등한 관계로 바뀌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안보, 그리고 경제 중심의 양국 관계가 이제는 과거사 기타 한일 관계 전반에 관한 이슈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봐야겠죠."

Q.한일 관계의 해법은?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명확한 만큼 이에 대한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이와 별도로 즉 분리해서 경제, 안보, 기타 현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그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Q.한일 정상회담 전망은?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

"양국 정상회담 개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아베 총리의 정전 70주년 담화 내용이 무엇을 담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간에 구체적인 합의안이 도출되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기타 정상회담을 위한 다자적인 국제회의 계기를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을까 등등의 변수가 고려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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